금곡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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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금곡사 주지 청운(靑雲) 스님

주지스님의 소개는 불교춘추 12호 『 역사인물탐구 圓光』 에서
이 준 건국대명예교수님께서 직접 금곡사를 답사하시고 집필한 내용을 발췌하였습니다.

금곡사에서 두어 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청운스님이 돌아왔다.
금곡산 골짜기에 어둠의 그림자가 가볍게 밀려오기 시작할 즈음 우리는 요사의 마루에 앉아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절 아래서 자동차 서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의 눈에는 호랑이 한 마리가 절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얼굴의 모습이나 몸을 흔드는 모습이 마치 호랑이 같았는데 가까이 오는 것을 보니 호랑이 상호를 한 스님이었다. 우리는 그 스님이 주지 스님임을 바로 알 수 있었으며, 인사를 나눈 다음 방에 들어가 이 절의 내력에 대하여 듣게 되었다.

창건주요 조모인 오법홍화(吳法?華) 보살이 입적한 뒤 스님은 마음속에서 좋은 스승을 모시고 정성껏 받들면서 법당을 지어 절을 이루어 보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늘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 왔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밖에서 스님을 여러 번 모셔 왔지만 모두 한달도 안 되어 짐을 싸기 때문에 절은 늘 거기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모신 스님들이 그렇게 빨리 떠나가는 것은 금곡산 터가 너무 거세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기도승 들이 꿈으로 받거나 영으로 받는 문답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뇌하다가 떠났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때는 3년 동안을 스님의 부친이신 손일호 거사가 주지처럼 일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청운 스님은 그 뒤에도 항상 이곳에 좋은 법당을 건립하고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극정성 기도해 왔는데, 그 기도가 지극해서 인지 1995년 스승을 만나는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미타종 교육원장 월정(月淨)스님(現 : 미타종 정종)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다.

지리산에서 신도들과 같이 기도 수행을 하고 있던 월정 스님이 "월성군 강서면 사곡리에 있는 원광법사 부도를 친견하라"는 현몽(現夢)을 하였다. 강서을 찾으니 그것은 안강읍의 옛 지명이라 아는 이가 없으므로 경주시 문화재 관리과에서 찾아가 원광법사 부도가 있는 곳을 문의하여 지금의 금곡산 즉, 안강읍 두류1리라는 것을 알고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월정 스님은 원광법사의 부도만을 생각하였고 그 곳에 절이 있으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청운 스님이 월정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속성이 손(孫)진락이라고 하자 월정 스님은 전에 꾸었던 꿈을 회상하며,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한다. 청운 스님은 그때 월정 스님이 처음 만나는 분 같이 않았고 마치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품속에 든 것처럼 포근함을 느꼈으며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우러났다고 한다.

그뒤 월정 스님이 금곡사를 몇 번 방문하였고 이러한 인연으로 청운 스님은 월정스님에게 수계하여 지금의 청운(靑雲)이란 법명도 받았다. 틈이 나는 대로 1주일씩 스승의 곁에 가서 불법을 공부하고 왔고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청운 스님은 그 뒤 손수 안강읍에서 자재를 날라다가 아담한 법당을 세웠고 지금은 금곡사가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알려지면서 험한 길이지만 신도들이 포항이나 울산에서까지 찾아들기 때문에 금곡사가 점차 발전하고 있다고 하였다.

수행 중에 어떤 불가사의한 체험을 한 것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하니 스님은 관음정근을 지극하게 하는 도중 꿈에 안강읍과 포항의 물난리를 미리 본 것도 있고, 법당을 지을 때 허리를 다쳐서 돌아누울 수도 없었는데 법당을 빨리 지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다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털고 일어난 일 등 수없이 많지만 그런 것은 함부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줄였다.

스님은 오히려 원광법사의 수행 도량이었던 만큼 원광법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금곡사를 훌륭한 도량으로 조성하고 싶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삼기산의 여우와 금곡산의 호랑이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하다 어느덧 설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 혹 청운 스님이 금곡산 호랑이가 아닐까 하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처 마음속 호랑이일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청운스님은 숙세에 금곡산 금곡사에서 수행을 한 사문이었고 월정 스님은 그 시절에도 미타종 교육원장 월정(月淨) 스님(現 : 미타종 정종)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다.

지리산에서 신도들과 같이 기도 수행을 하고 있던 월정 스님이 "월성군 강서면 사곡리에 있는 원광법사 부도를 친견하라"는 현몽(現夢)을 하였다. 강서을 찾으니 그것은 안강읍의 옛 지명이라 아는 이가 없으므로 경주시 문화재 관리과에 찾아가 원광법사 부도가 있는 곳을 문의하여 지금의. 금곡산 즉 안강읍 두류1리라는 것을 알고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월정 스님은 원광법사의 부도만을 생각하였고 그곳에 절이 있으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청운 스님이 월정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속성이 손(孫)진락이라고 하자 월정 스님은 전에 꾸었던 굼을 회상하며,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한다. 청운 스님은 그때 월정스님이 처음 만나는 분 같이 않았고 마치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품속에 든 것처럼 포근함을 느꼈으며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우러났다고 한다.

그뒤 월정 스님이 금곡사를 몇 번 방문하였고 이러한 인연으로 청운 스님은 월정스님에게 수계하여 지금의 청운(靑雲)이란 법명도 받았다. 틈이 나는 대로 1주일씩 스승의 곁에 가서 불법을 공부하고 왔고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청운 스님은 그 뒤 손수 안강급에서 자재를 날라다가 아담한 법다을 세웠고 지금은 금곡사가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알려지면서 험한 길이지만 신도들이 포항이나 울산에서까지 찾아들기 때문에 금곡사가 점차 발전하고 있다고 하였다.

수행 중에 어떤 불가사의한 체험을 한 것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하니 스님은 관음정근을 지극하게 하는 도중 굼에 안강읍과 포항의 물난리를 미리 본 것도 있고, 법당을 지을 때 허리를 다쳐서 돌아누울 수도 없었는데 법당을 빨리 지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다 보니 언제 그랬댜는 듯이 털고 일어난 일 등 수없이 많지만 그런 것은 함부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줄였다.

스님은 오히려 원광법사의 수행 도량이었던 만큰 원광법사의 정신을 계승하여 금곡사를 훌륭한 도량으로 조성하고 싶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삼기산의 여우와 금곡산의 호랑이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하다 어느덧 설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 혹 청운 스님이 금곡산 호랑이가 아닐까 하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처 마음속 호랑이일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청운스님은 숙세에 금곡산 금곡사에서 수행을 한 사문이었고 월정 스님은 그 시절에도 청운 스님의 스승이었으며 그런 깊은 인연이 전란으로 퇴폐해진 이 도량을 복원하고자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을 수는 있을 것이다.

부디 청운 수님의 원력으로 금곡사가 크게 발전하기를 빌어 본다. 나무 관세음보살.